백기만(白基萬) 1902~1969

출 생 : 대구 중구 재마루길 15 (남산동 284번지)
호 : 목우 (牧牛)
작품 : 청개구리, 상화와고월, 씨뿌린사람들 간행

일제강점기 항일지사이며, 초창기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 '대구 시민의 노래' 작사자로 누구보다 대구를 사랑하고 아낀 향토 문화계의 거목. 3.1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한국 근대 문학의 요람인 '금성'지 창간.
서병오(徐丙五) 1862~1935(철종13-?)

대구 중구 중앙대로 689 (동성로3가 8번지 (현 농협대구지부))
호 : 석재(石齋))

항일기 서화가로 사군자에 뛰어났으며, 특히 시·글씨·그림·가야금·장기·바둑·의약에 능하여 8능 칭함. 대구에서 교남서화연구회를 발족 후진양성에 힘씀
서동균 (徐東均) 1902~1978

출 생 : 대구시 중구 향촌동의 일명 먹당골목
호 : 죽농 , 가학 (家學)

근대 대구를 대표하는 서예가, 사군자의 대가, 특히 묵주화에 능함. 스승 서병오가 운영하던 교남서화회를 물려받아 영남서회원으로 이름을 바꿔 후진을 양성. 영남지역 서예가들의 모임인 해동서화회 창립, 1975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이 인 (李仁) 1896~1979

출 생 : 대구 중구 동성동
호 : 애산 (愛山)

일제 강점기 민족주의 변호사로 각종 항일사건의 변호사를 맡았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음. 8.15해방 후에는 검찰총장 등 역임. 대한민국 건국 초대 법무부 장관과 여러 차례 국회의원을 지냄. 재산을 전액 한글학회에 기증함.
이상화(李相和) 1901~1943

출 생 : 대구 중구 서문로 2가
호 : 무량(無量), 상화(尙火), 상화(想華), 백아(白啞)

"백조" 동인 ,프랑스유학후 카프(KAPF)활동, 1927년 의열단 이종암 사건으로 구금 3.1운동 대구학생운동 선봉, 개벽지를 중심으로 시,소설,평론등 발표
시집 : 늪의우화, 나의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시비 : 달성공원내 소재 이상화 고택복원 (중구 계산동 미소시티 북편)
이상백(李相佰) 1904~19669

출 생 : 대구 중구 서문로 2가
저 서 : '조선문화사연구논고', '이조 건국의 연구' 등

독립운동가 이상정(李相定), 민족시인 이상화(李相和)의 동생, 한국사회학의 개척자로 활약, 조선왕조사연구에 힘썼으며, 체육인으로서 8·15광복후 조선체육동지회 창설 위원장 역임
이인성(李仁星) 1912~1950

출 생 : 대구 중구 수동
작 품 : "경주의 산곡에서", "여름 실내에서", "아리랑고개" 등

대구 출신의 서양화가. 중구 수창공립보통학교 (13회) 졸업.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고 1938년 개인전, 1940년 김인승(金仁承)·심형구(沈亨求)와 함께 3인전을 가졌으며, 개인 아틀리에를 열어 후배를 양성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임. 작품경향은 인상파적인 감각주의에서 그의 이국취향과 토속적 소재를 발전시킴. 한국의 고갱이라는 평가도 있음.
현진건(玄鎭健) 1900~1943

출 생 : 대구 중구 계산동
호 : 빙허 (憑虛)

작 품 : '운수좋은날', '빈처', '술권하는 사회', '무영탑' 등
"개벽"지에 '희생자'로 문단 등장
현제명(玄濟明) 1902~1960

출 생 : 대구 중구 남산동
호 : 현석 (玄石)
작 품 : 오페라 "춘향전", "왕자호동", 가곡으로 "고향생각", "그 집 앞", "희망의 나라로" 등

중구 대신동 계성학교를 거쳐 숭실전문에 입학 광복후 고려교향악단 설립, 서울대 초대음악대학장 역임, 양악계 대부
박태준(朴泰俊) 1900~1986

출 생 : 대구 중구 남성로 157
작 품 : 「오빠생각」 · 「오뚝이」 · 「하얀밤」 · 「동무생각」 등

일제하 민족의 비원을 노래에 담은 작곡가 겸 우리나라 합창음악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지휘자. 한국서양음악의 산증인, 대구 중구 대신동 계성학교졸업, 평양숭실전문학교 졸업. 동요 "오빠생각" "가을밤" "골목길"과 시인 이은상과 함께 "동무생각" 등 노래작곡. 197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이상정(李相定) 1897~1947

출 생 : 대구 중구 서문로 2가
호 : 청남(晴南), 산은(汕隱)
작 품 : 오페라 "춘향전", "왕자호동", 가곡으로 "고향생각", "그 집 앞", "희망의 나라로" 등

독립운동가, 이상화(李相和), 이상백(李相伯)의 형 일본 고꾸라꾸잉 대학 졸업, 오산,경신,계성,신명등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23년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에 투신. 상해,남경등지에서 항일투쟁에 종사,
1932년 흥사단(興士團)에 가입. 1939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에 선임
1942년 중국군 화중군사령부의 막료로 중일전쟁에 직접참가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이쾌대(李快大) 1913~1965
대한민국의 화가이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부터 해방을 거쳐 1950년 무렵까지 격동의 혼란기를 딛고 독보적인 예술혼을 꽃피운 20세기 한국미술의 거장이지만 월북화가란 전력 때문에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화가임.
이상춘(李相春) 1910~1937
대구 중구 출생이며,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그림 그리는 일에 열중하다 중퇴. 이상춘은 1925년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에 참가하였으며, 1927년 영과회의 회원으로도 활동함. 영과회는 대구에서 최초로 결성된 한국인 서양화 단체임.

일본에서 무대장치를 독습해 온 이후 프로미술운동에 가담하여 무대미술을 비롯한 연극운동을 주도한 예술인의 한사람임. 1930년에 문인이자 화가인 이갑기와 함께 프롤레타리아 연극 단체인 가두극장(街頭劇場)을 만들어 연극 활동에 매진하였으며, 1934년에 박진명과 함께 조형미술연구소를 설립하여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하 프로예맹 약칭)의 활동을 이끌었음.